-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천상의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 이만익 〈신단수도〉 (1991), 엠케이컬렉션 제공
일연은 이러한 이야기의 힘을 진즉 꿰뚫어 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일연은 국사(國師,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조정에서 내리 던 칭호)로 책봉될 정도로
고려 왕실과 불교의 정신적 중추였으며,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그런 그가 청년 시절부터 모아온 자료를 바 탕으로 70대 후반에 집필을 시작해 만년에 펴낸
역사서 〈삼국유 사〉는 민중들의 삶 속에 전해오는 신화, 설화, 전설, 향가 등을 포 괄하는, 한 마디로 옛 이야기책이다.
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 을 그가 공들여 펴낸 이유는 〈삼국유사〉보다 앞서,
왕명에 따라 발간된 〈삼국사기〉가 빠뜨렸던 우리 이야기를 그러모으기 위함이었다.
당대의 지식인이 유학적 관점에서 집필한 〈삼국사기〉는 왕과
중국 중심적으로 기술된 면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자료와 문
헌들이 배제되거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누락되기도 했다.
반면 몽골의 간섭과 수탈, 무신정권의 폐해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우리 이야기가 절실했던 일연은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이 깃든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담긴 다양한 설화와 종교적 신화는 책의
운명을 기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국유사〉를 단지 허황된 세속의 이야기라고 여기던 시선은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거세졌고, 결국 〈삼국유사〉는 잊히다 시피 했다.
모순되게도,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판본이 일본에서 19 세기 말부터
일본 고대사 연구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의 맥락에서 관심을 받아 20세기 초, 현대식으로 출판되었다.
이를 접하고 소개한 최남선에 의해 〈삼국유사〉는 다시 우리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인간관, 자연관, 세계관을 알아본 덕분에 오늘날 비로소 그 위상을 되찾았다.
내가 작은 아이였을 무렵, 밤이 되면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야기를 기다리곤 했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놀라워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내뿜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어린이에게
캄캄하게 저문 밤 은 너무도 적막해서 어딘가 어색하고 두려웠다.
우다다 뛰어대던 발소리도,
명랑하게 터뜨리던 웃음도
주춤하게 되는 그 시간이 어 김없이 찾아오면,
옛이야기 속 엉뚱하고 떠들썩한 이야기들을 불 러와 달라고 청하곤 했다.
발화자로 지목된 엄마, 아빠 혹은 할머 니는 아이가 안심하고 까무룩 잠이 들 때까지
기억 속 사금 같은 이야기를 캐어 긴긴 시간 들려주었다.
이렇듯 누군가의 입에서 누 군가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말과 글로 번져가며 생명력을 이어 온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전해지는 시간 동안 행해졌던 심리적 기능 면에서도 분명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간된 〈삼국사기〉가 빠뜨렸던 우리 이야기를 그러모으기 위함이었 다.
당대의 지식인이 유학적 관점에서 집필한 〈삼국사기〉는 왕과 중국 중심적으로 기술된 면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자료와 문 헌들이 배제되거나
,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누락되기도 했다.
반면 몽골의 간섭과 수탈, 무신정권의 폐해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우리 이야기가 절실했던 일연은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이 깃든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담긴 다양한 설화와 종교적 신화는 책의 운명을 기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국유사〉를 단지 허황된 세속의
이야기라고 여기던 시선은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
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거세졌고, 결국 〈삼국유사〉는 잊히다
시피 했다. 모순되게도,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판본이 일본에서 19
세기 말부터 일본 고대사 연구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의 맥락에서 관
심을 받아 20세기 초, 현대식으로 출판되었다. 이를 접하고 소개한
최남선에 의해 〈삼국유사〉는 다시 우리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인간
관, 자연관, 세계관을 알아본 덕분에 오늘날 비로소 그 위상을 되찾았다.
소설가 김훈은 〈삼국유사〉에 대해 “일연은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썼다.
이것이 당대의 야만에 맞서는 그의 싸움이었다”고 말했으며,
아티스트 백남준은 자신이 〈삼국유 사〉에 엄청난 애착을 갖는 이유로
“인간의 판타지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타계한 이 어령 선생 역시 한국 최고의 고전으로 〈삼국유사〉를 꼽은 바 있다.
작년 말에는 연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파른본 삼국유사’가 유 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