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야기의 힘은 흐른다         에디터 | 김수미


  • 〈삼국유사〉에 따르면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사람으로, 당시 신라 최고의 미녀였다. ‘헌화가’와 ‘해가’의 주인공이다.
이만익 〈수로부인영접도〉 (1995~2008), 엠케이컬렉션 제공



내가 작은 아이였을 무렵, 밤이 되면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야기를 기다리곤 했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놀라워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내뿜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어린이에게 캄캄하게 저문 밤 은 너무도 적막해서 어딘가 어색하고 두려웠다. 
우다다 뛰어대던 발소리도, 명랑하게 터뜨리던 웃음도 주춤하게 되는 그 시간이 어 김없이 찾아오면, 옛이야기 속 엉뚱하고 떠들썩한 이야기들을 불 러와 달라고 청하곤 했다. 
발화자로 지목된 엄마, 아빠 혹은 할머 니는 아이가 안심하고 까무룩 잠이 들 때까지 기억 속 사금 같은 이야기를 캐어 긴긴 시간 들려주었다.
 이렇듯 누군가의 입에서 누 군가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말과 글로 번져가며 생명력을 이어 온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전해지는 시간 동안 행해졌던 심리적 기능 면에서도 분명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서동요 (선화공주) 선 화 공 주

S e o d o n g y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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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서동요(선화공주) 1984  Oil on Canvas 97x 97cm (자료제공 : 엠케이컬렉션 )

[출처] 이만익 작품의 민족성 民族性 과 세계성 世界性|작성자 주몽








정  읍  사 

                        Jeuhng-Ub-Sa (Prayer for Lover’s 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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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정읍사 Jeuhng-ub-sa (Prayer for Lover’s Safety) 1982
Oil on Canvas, 100x80cm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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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  정읍사 >는 그림으로 만나는 삼국유사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지고 소개가 되었습니다.

정읍사(井邑詞)는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유일한 백제의 노래이다.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노래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신라 경덕왕(景德王) 이후 구백제(舊百濟)에 유행하던 민간노래인 듯하며,
고려·조선 때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이 노래는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음에도 이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몸이나 편안히 다니시라고
달에게 축원하는 아름다운 여심의 간절한 표현이다. 이 노래에서 달은 곧 천지신명(天地神明)을 뜻하며 
이를 향해 여인이 축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정읍사 >가 음악으로 이렇게 작곡된 것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일 것이다. 

이 시대 작품 중 눈에 띄는 작품은 이만익 작가의 < 정읍사 >입니다. 
이만익 작가는 '한국의 자화상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죠. 
또한 이만익 화가는 한국의 인정 가득한 가족도와 설화 그림, 역사화 등을 통해
 한(恨)과 기원, 꿈이 담긴 우리의 얼굴을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색채와 단순하지만 명쾌한 형태로 전통채색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지금 이 시대에 마주해도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고, 
최근에  그려졌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트렌디한 느낌을 풍기고 있습니다.


[출처] 이건희 컬렉션 이만익작품 <  행려(진달래), 정읍사  >|작성자 주몽







특집 Chaeg X 월간 민화
처 용 가 무 도

Cheoyon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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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하고 헛된 책" 우리는 이야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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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에서 환웅은 천상의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 이만익 〈신단수도〉 (1991), 엠케이컬렉션 제공



일연은 이러한 이야기의 힘을 진즉 꿰뚫어 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일연은 국사(國師,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조정에서 내리 던 칭호)로 책봉될 정도로
 고려 왕실과 불교의 정신적 중추였으며,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그런 그가 청년 시절부터 모아온 자료를 바 탕으로 70대 후반에 집필을 시작해 만년에 펴낸
 역사서 〈삼국유 사〉는 민중들의 삶 속에 전해오는 신화, 설화, 전설, 향가 등을 포 괄하는, 한 마디로 옛 이야기책이다.
 5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 을 그가 공들여 펴낸 이유는 〈삼국유사〉보다 앞서, 
왕명에 따라 발간된 〈삼국사기〉가 빠뜨렸던 우리 이야기를 그러모으기 위함이었다. 


당대의 지식인이 유학적 관점에서 집필한 〈삼국사기〉는 왕과
중국 중심적으로 기술된 면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자료와 문
헌들이 배제되거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누락되기도 했다.

반면 몽골의 간섭과 수탈, 무신정권의 폐해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우리 이야기가 절실했던 일연은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이 깃든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담긴 다양한 설화와 종교적 신화는 책의
운명을 기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국유사〉를 단지 허황된 세속의 이야기라고 여기던 시선은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거세졌고, 결국 〈삼국유사〉는 잊히다 시피 했다. 

모순되게도,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판본이 일본에서 19 세기 말부터 
일본 고대사 연구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의 맥락에서 관심을 받아 20세기 초, 현대식으로 출판되었다.

 이를 접하고 소개한 최남선에 의해 〈삼국유사〉는 다시 우리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인간관, 자연관, 세계관을 알아본 덕분에 오늘날 비로소 그 위상을 되찾았다.
 
내가 작은 아이였을 무렵, 밤이 되면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이 야기를 기다리곤 했다. 
모든 순간이 새롭고 놀라워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내뿜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어린이에게 
캄캄하게 저문 밤 은 너무도 적막해서 어딘가 어색하고 두려웠다. 

우다다 뛰어대던 발소리도, 
명랑하게 터뜨리던 웃음도
 주춤하게 되는 그 시간이 어 김없이 찾아오면, 
옛이야기 속 엉뚱하고 떠들썩한 이야기들을 불 러와 달라고 청하곤 했다.

 발화자로 지목된 엄마, 아빠 혹은 할머 니는 아이가 안심하고 까무룩 잠이 들 때까지 
기억 속 사금 같은 이야기를 캐어 긴긴 시간 들려주었다.

 이렇듯 누군가의 입에서 누 군가의 기억으로, 그리고 다시 말과 글로 번져가며 생명력을 이어 온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이야기가 전해지는 시간 동안 행해졌던 심리적 기능 면에서도 분명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간된 〈삼국사기〉가 빠뜨렸던 우리 이야기를 그러모으기 위함이었 다. 
당대의 지식인이 유학적 관점에서 집필한 〈삼국사기〉는 왕과 중국 중심적으로 기술된 면이 있었고, 
우리나라의 전통 자료와 문 헌들이 배제되거나
,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왜곡·누락되기도 했다. 

반면 몽골의 간섭과 수탈, 무신정권의 폐해로
 오랫동안 고통받은 이들을 일으켜 세울 우리 이야기가 절실했던 일연은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이 깃든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담긴 다양한 설화와 종교적 신화는 책의 운명을 기구하게 만들기도 했다. 

〈삼국유사〉를 단지 허황된 세속의
이야기라고 여기던 시선은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
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더욱 거세졌고, 결국 〈삼국유사〉는 잊히다
시피 했다. 모순되게도,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판본이 일본에서 19
세기 말부터 일본 고대사 연구와 조선의 식민지 경영의 맥락에서 관
심을 받아 20세기 초, 현대식으로 출판되었다. 이를 접하고 소개한
최남선에 의해 〈삼국유사〉는 다시 우리 땅에서 빛을 보게 되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삼국유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인간
관, 자연관, 세계관을 알아본 덕분에 오늘날 비로소 그 위상을 되찾았다. 

소설가 김훈은 〈삼국유사〉에 대해 “일연은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썼다. 
이것이 당대의 야만에 맞서는 그의 싸움이었다”고 말했으며, 
아티스트 백남준은 자신이 〈삼국유 사〉에 엄청난 애착을 갖는 이유로
 “인간의 판타지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타계한 이 어령 선생 역시 한국 최고의 고전으로 〈삼국유사〉를 꼽은 바 있다. 
작년 말에는 연세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파른본 삼국유사’가 유 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낙 화

The Falling of Blosso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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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유구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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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만익 〈웅녀도〉, 엠케이컬렉션 제공


단군 신화를 최초로 수록한 덕분에 오늘날 우리에게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가 전해진다는 점이〈삼국유사〉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던 곰과 호랑이에게 동굴에서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으라는 과제를 주고,
곰만여성의 몸으로 인간이 되어 환웅과 혼인해 단군을 낳았으며, 고조선을 세우기에 이른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신화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를 두고 이어령은 신화가 하나의 현실 속에 담긴 마음의 언어라면서,
단군 신화를 “태초의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시이며, 철학이며, 윤리이며, 
그 사회의 정치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령의 삼국유사 이야기』에 따르면 단군 신화 속 호랑이는 현실적이고 외적인 힘을 상징하는 반면,
곰은 이상적이고 내적인 힘의 원천을 상징한다. 
호랑이는 실패하고 곰이 이겼다는 이야기의 의미는,
한국인이 인간다움과 지도자 인격의 가치를 정복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우며 참고 견디는 인내에 두었다는 뜻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주 몽 의 하 늘 

T H E   S K Y   O F   J U M O N G


Lee Manik has depicted narratives from Legends and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삼국유사, 三國有史) in paintings.
He produced many huge paintings adopting the myth of Jumong among them.
This is the birth myth of Goguryeo, one of the three kingdoms
that was most powerful and prosperous.

 Lee has consistently portrayed Jumong, the founding monarch of Goguryeo.
The period he depicted Jumong was from the 1980s to the early 2000s.
This painting is seen as a reflaection of Lee's intent to represent
​ Korean people's greatness and endeavors​ to overcome a sense of helplessness 
in the times ofturbulence and national crisis including the 1990s IMF financial crisis. 

This work also gives a glimpse of the humanist ideal that puts emphasis on human decency
 by describing the relations between god and human and nature and animal found in the myth of Jum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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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주몽의 하늘〉 (1990) 개인 소장


단군 신화와 더불어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국 신화 중 하나가 주몽 설화다. 
주몽 설화는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삼국사 기〉 〈동국이상국집〉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하백의 딸 유화는 해모 수와 정을 통하게 되나 이내 버려지고, 그로 인해 부모에게서도 쫓겨난다. 

동부여에서 금와왕을 마주친 유화는 이 사실을 털어놓고, 금와왕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유화를 방에 가두었다. 
그런데 햇빛 이 유화의 몸을 비추고, 그 후 잉태해 낳게 된 것이 커다란 알이다.
이를 불길한 징조로 여긴 사람들은 알을 동물들에게 먹이로 던져도 보고, 
깨뜨리려고도 해보지만 오히려 짐승들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보고 유화에게 돌려주고, 여기에서 주몽이 태어난다. 

탄생한 이 후에도 주몽은 남다른 용모와 지략 때문에 금와왕의 일곱 아들로부 터 후환으로 여겨져 배척받는다. 
그러나 그는 형제들로부터 목숨 을 위협받는 속에서도 위험을 피해 고구려를 세우기에 이른다.




주몽朱夢 양마도 

 J u m o n g  and  H i s  H o r s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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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주몽朱夢 양마도 Jumong and His Horse 1991  
Oil on Canvas,  160 x 300cm  (자료제공 : 엠케이컬렉션 )
이만익 주몽朱夢 양마도  (1992) 엠케이컬렉션 제공



그 밖에도 처용가, 서동요, 수로부인 이야기 등 우리가 자라오는 동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많은 이야기들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군 신화에서처럼 우리의 사고적 원형을 유추할 수도 있고, 
설화 속 인물의 영웅적 면모를 이상향 삼을 수 있으며, 
때로 어떤 이야기에서는 경계해야 할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모든 상상력과 열망, 듣는 이의 마음에 이는 크고
작은 파동의 물결까지가 하나의 거대한 역사의 일부임을 〈삼국유사〉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은 자체가 가진 물성을 뛰어넘어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웅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야기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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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영웅들에게는 어머니가 존재하며, 그 어머니의 힘과 자애로움에
대한 존경을 표했던 이만익은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자주 그렸다.
이만익 〈유화취적도〉 (1998) 개인 소장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로 손꼽 히는 이만익 작가는 실존 인물인 동시에 신화적 인물인 주몽의 기개와 진취성에 깊이 매료된 대표적인 인물이다. 
심청전, 흥부전, 춘향전 등 다양한 한국의 이 야기를 그렸던 그는 〈삼국유사〉를 유독 아꼈고, 그중에서도 주몽 이야기를 가장 많이 그렸다.

 파리 유학 시절, 창의성과 독창성보다는
 그림을 잘 그리는 데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 맞닥뜨린 그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했고, 
“세상이 급변하고 동서가 뒤섞인 때에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까지가 우리인지, 
또 우리의 꿈과 이상, 우리의 현재가 무엇인지를 확 언할 수 없다”는 고민 끝에
한국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재발견 했다. 

그의 그림은 서구적인 입체 표현과 원근법에서 평면으로 
돌아왔고, 한국의 오랜 이야기들이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의 고뇌
와 성찰, 그리고 부단한 수련 끝에 탄생한 주몽의 용맹한 모습들은
보는 이의 마음에 뜨거운 기백을 역동적으로 불어넣는다.

그의 고뇌와 성찰, 그리고 부단한 수련 끝에 탄생한 주몽의 용맹한 모습들은
보는 이의 마음에 뜨거운 기백을 역동적으로 불어넣는다.





유 화 자 매 도

 Princess Youh-hwa and Her Si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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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익 유화취적도  Lee Man Ik Princess Youh-hwa and Her Sisters 2003
Oil on Canvas, 162 x11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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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날 

N E W  A G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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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익 〈새날〉 (2000) 개인 소장














이만익  Lee Manik
‘한국인의 이야기를 가장 한국적으로 그리는 화가’ 

이만익은 우리의 전통적 가족애, 국가와 고향, 나아가 건국신화와 설화, 
민담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근원을 주된 소재로 삼아 왔다. 

우리의 문학과 서사에 담긴 희로애락을 담고자 한 이후로 대상을​
단순화한 선과 토속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한 그는,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개·폐회식의 미술감독을 역임했으며,
뮤지컬 〈명성황후〉 포스터 제작 등을 통해 한국적 미의식과 감성을 세계에 알렸다. 
2022년, 서거 10주기를 맞아 마련된 특별전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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